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횡성 전투 (문단 편집) == 전투 == 1951년 2월 11일 밤, 중공군 40군 42군 66군은 8사단을 향해 [[쓰나미]]처럼 몰아닥쳤다. 8사단이 만들어둔 부대 간격 간격마다 중공군이 파고들어갔고, 빈틈을 따라 깊숙이 내달린 중공군은 곳곳에서 8사단의 퇴로를 차단하며 완벽한 포위망을 구축했다. 대대도, 연대도, 사단도 전혀 지휘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된지 몇 시간만에 8사단은 완벽하게 마비상태에 빠졌다. 조직으로서 움직이지 못한 채 고립된 8사단 병력들은 무질서하게 후퇴를 시작했으나 곳곳에서 퇴로를 차단한 중공군에 의해 후퇴 도중에 격파되고 말았다. 8사단의 전방 부대가 궤멸되면서 8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던 미군 지원병력과 한국군 [[포병]]대도 그대로 포위망에 갇혔고,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중화기와 중장비를 전부 버린 끝에 겨우 몸만 건질 수 있었다. 2월 13일, 중공군의 공세 시작 후 대략 하루만에 8사단은 궤멸되었다. 살아 돌아온 뒤 차후 다시 전투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 8사단 병력은 3000여명 정도. 그 중에서도 태반은 애초 후방인 사단본부에 있던 병력으로, 사단 전방에 있던 8사단 예하 3개 연대는 대부분이 전사, 포로 혹은 부상으로 전투서열에서 빠짐에 따라 소멸되다시피 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